어느 어머니가 안 그렇겠나마는, 아이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울고 웃고 하게 된다. 서른다섯 늦은 나이에 얻은 아이는 뱃속에서부터 엄마와 고생을 함께 했다. 당시 전노협 쟁의국장이던 나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집회와 시위를 조직하는 바쁜 일정에 쫓기느라 아기를 기다리지도 않았고 아기가 온 것도 눈치 채지 못한 둔한 엄마였다. 몸 상태가 안 좋고 계속 미열이 나는데 혹시나? 하면서 병원에 가서야 임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자 기쁘면서도 덜컥 걱정부터 들었다. 나 너무 늦은 거 아냐? 전국을 종횡무진 돌아다니고, 업무상 술도 많이 마셔야 했는데 애한테 해로우면 어쩌지? 아니, 이런 거 저런 거 떠나서 나는 한 인간을 키워낸다는 커다란 책임을 질 정도로 성숙한 사람인가? 노동운동 안에서는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갑자기 생생하게 다가왔다.
자연분만을 해보려고 애를 쓰다가 촉진제를 맞고 애가 위로 올라붙은 것도 모르고 뱃속의 애와 엄마가 함께 고생을 하다 결국 수술하고, 애가 태변을 먹는 바람에 태어나자마자 기흉으로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우균이는 무사히 내 곁에 와 주었다. 그러나 나는 애를 낳고 나서 우울증에 시달렸다. 태어나자마자 중환자실 행을 했던 아이의 건강, 앞으로 키울 걱정, 모든 것이 불안하고 무서웠다.
하지만 나는 우울할 자유도 없는 사람이었다. 어려운 조건의 전노협을 생각해서 조기 복귀해 줄 수 없느냐는 위원장의 부탁을 받았다. 결국 아이를 낳고 제대로 몸조리도 못한 채 겨우 한 달 만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덕분에 아직까지 손발이 저리고 뼈마디가 쑤실 때가 있지만, 어쩌겠는가, 내 태에서 나오지는 않았지만 전노협도 내 자식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는데.
지금 아이를 생각하면 무조건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자라면서 엄마 손길이 무척 아쉬웠을 텐데도 아이가 모난 곳 없이 큰 것만 해도 내가 큰 복을 받았다 싶다. 잠시 팔불출이 되어볼까? 지금 고2인 우리 아들은 무지 멋있다. 여자아이들에게 인기 짱이다. 키도 크고 외모에도 신경 많이 쓰고, 패션 감각도 있고 연애를 중3때부터 했다. 나와 애 아빠는 서로 쳐다보면서 ‘얘가 이런 건 도대체 어디서 왔나 몰라’ 하고 웃는다. 자격지심일지도 모르지만, 애가 연애를 일찍 시작한 건 엄마와 살뜰하게 정을 주고받은 경험이 없어서 일찍부터 애정을 주고받는 관계를 갈구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 생활 조건이 만들어낸 철학일지도 모르지만, 내 교육철학은 분명하다. 나는 우균이에게 별 간섭을 하지 않는다. 사실 간섭할 겨를도 없이 나는 내 일을 해야 했고 아이는 스스로 커나갔다. 그러나 “네가 네 삶의 주인이 되도록 해. 무슨 일을 할 때 마음에 대고 물어보고, 남의 눈을 의식하기보다 네 스스로 이유가 분명한 선택을 해.”라는 말은 빼놓지 않았다. 남의 눈에, 남의 입방아에 휘둘리는 삶은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가. 나는 우균이가 그런 고달픈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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