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내 생애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이선희의 ‘인연’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어린 시절의 추억 한 장면이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학교가 끝난 후, 작달막한 단발머리 여자아이가 책보를 허리에 둘러 묶고 튀어나온다. 초등학교 교문을 나선 아이는 먼발치에 있는 느티나무 쪽을 흘낏 쳐다보고는 쏜살같이 내달린다. 누렁이 ‘해피’는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 아이를 보자마자 귀가 뒤로 젖혀지도록 있는 힘껏 뛰어간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무릎을 꿇은 아이는 두 발로 일어서다시피 한 해피를 안고 얼굴을 맞댄다. 아이는 해피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장난도 치면서 동무처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경기도 파주 광탄의 도마산동이라는 조그만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해피는 어릴 적 그 시골집에서 키우던 누렁이의 이름이다. 그때 촌에서 키우는 개의 이름은 대개 ‘해피’ 아니면 ‘메리’였다. 우리 개가 해피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옆집 개 이름이 ‘메리’였기 때문이다. 해피의 족보에 대해서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해피와 나의 인연은 여섯 살 되던 해 엄마가 이웃에서 갓 태어난 강아지를 얻어오면서 시작되었다. 동네에 내 또래가 별로 없었던 탓에 해피는 나의 단짝 친구가 되었다. 아침에 눈떠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해피는 나의 친구였고 때론 스승이기도 했다.
초등학교 등하교 때 해피는 하루도 빠짐없이 길동무가 되어 주었다. 아침에 등교할 때는 학교 정문까지 바래다주었고 하교 길에는 학교가 보이는 느티나무 밑에서 기다리곤 했다. 여름 저녁 어스름에 오빠랑 깡통을 들고 개구리를 잡으러 나서면 오빠가 휘두른 막대기에 맞아 기절한 개구리를 찾아내는 건 해피의 몫이었다.
시골에서는 이웃에서 장사를 지내면 동네 사람들이 그 집에서 밤을 새는 것이 관례다. 어느 날 이웃 초상집에 갔던 아버지가 새벽녘에 집에 오려고 초상집을 나설 때 난리가 났다. 아무리 찾아도 신발이 없는 것이다. 지금처럼 물자가 사방에 풍성하게 널려 있는 시절이 아니어서, 구두 한 켤레는 큰 재산이었다. 어쩔 수 없이 슬리퍼를 빌려 신고 집으로 온 아버지는 어처구니없게도 신발이 툇마루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습을 보았다. 밤새 기다리던 해피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여러 켤레 신발 중에서 아버지의 것을 찾아 물어다 놓은 것이다.
요일별로 학교가 끝나는 시간까지 정확하게 알아차리고 기다리는 개였으니 그쯤은 놀랄 일도 아니었다. 나는 종종 해피의 영리함과 충직함에 탄복하곤 했다. 전생에 글 읽던 선비가 해피로 환생한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초등학교 4학년 가을 우리 집이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나는 해피를 데려가야 한다고 매일 엄마와 실랑이를 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식구들이 자기를 버리고 떠날 참이라는 걸 알아차렸는지, 해피는 꼬리를 흔들어도 예전 같이 힘차지 않았고 눈빛은 허허로웠다.
이삿날이 점점 다가오자 해피는 광에 들어가더니 보름째 광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끙끙거리는 신음소리가 길어졌다. 개가 ‘짖는’ 것이 아니라 ‘우는’ 소리가 얼마나 구슬픈지는 개를 키워본 사람만이 알리라. 어느 날 아무리 해도 먹지 않는 해피에게 밥을 갈아주러 광에 들어갔다가,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그 무엇이 해피의 눈에 고인 눈물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난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열 살 남짓의 어린아이가 가족의 힘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서울로 이사 온 지 두 해가 지난 어느 날, 고향에 다녀 온 아버지가 엄마에게 낮은 목소리로 하는 말이 들렸다. 해피를 잡았다고……. 눈앞이 캄캄해지고 속이 울렁거렸다. 해피와 더불어 내 숨이 끊어지는 줄 알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나는 그로부터 여러 날 밤을 이불속에서 숨죽여 울었다. 해피의 비통한 죽음은 내가 처음으로 인간이야말로 가장 잔인하고 이기적인 동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게 만든 계기였다.
해피의 죽음은 쓰디쓴 첫 이별의 아픔처럼 오랫동안 내 마음에 짙은 어둠을 드리웠다. 나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크나큰 슬픔을 간직하고서 사춘기에 접어든 것이다. 그 추억의 조각은 철들고 나서도 가끔 이른 새벽에 나를 깨우곤 했다. 어린 시절 첫 정을 주었던 나의 동무. 해피와의 추억은 나에게 인연에 대한 경외심과 허무를 가르쳐 주었다
임순례 감독의 작품 ‘날아라 펭귄’에는 채식주의자 이주훈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회식자리에서 살점이 저며진 채 회 접시에 놓여 아직도 눈을 두리번거리는 생선과 눈을 맞춘 그가 황망해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한 장면이 떠올라 버렸다.
20년 전 제기동의 전노협(민주노총 전신) 사무실 근처 한 보신탕집. 당시 전노협 지도위원은 개고기 한 점을 내게 들이밀었다. 내가 그 고기를 받아먹을 때까지 끝을 보겠다고 했다. 앞으로 간난신고(艱難辛苦)를 헤쳐가야 할 노동운동가가 그렇게 가리는 게 많고 유약하면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 두 손을 꼭 쥐고 하느님께 구원을 빌었다.
이글은 '심상정 이상, 혹은 현실'에 실린 글로 출판사의 동의를 얻어서 게재하였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